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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구생명정보의 비밀 품은 하논분화구
글쓴이 관리자  (admin)
2014-10-17 오후 2:00:10
지구생명정보의 비밀 품은 하논분화구

김동식(자연제주)

고환경 정보를 간직한 자연의 타임캡슐

빙하기 이후 5만년 동안 고기후·고생물의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귀포 하논분화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각별하다.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가 고민했던 ‘우리의 미래’를 마찬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곳이어서 그렇다. 오랜 세월 방치된 하논분화구를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개발’과 ‘보존’의 원칙에 가장 충실할 수 있을까. 이것은 경제의 지속가능성 뿐만 아니라 자연자원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맞닿게 되는 문제이다.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하논분화구는 화산섬 제주를 대표하는 상징 자원이다. 하논의 자원가치는 매우 독보적이다. 빙하기 이후의 모습대로라면 크고 작은 4개의 분석구를 거느린 가장 아름다운 화구호가 있었던 곳이다. 규모면에서도 한반도 최대이며, 유일한 마르(maar)형 분화구이다. 하논 화산체의 전체면적은 1,266,825㎡에 이르며, 그 둘레는 3.8km 이다. 동서방향으로 약 1.8km, 남북방향으로 약 1.3km의 너비를 갖고 있다. 분화구 바닥면적은 216,000㎡이고 직경은 1,000~1,150m, 최대 비고는 90m에 이른다.
하논의 화산활동은 학자들의 연대측정 결과에 따르면 약 3만~5만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산분출 초기 마그마가 지하수와 접촉하면서 폭발적인 화산재 분출을 야기하여 화산쇄설류에 의한 응회암 화구륜이 형성됐고, 화산활동이 계속되면서 지하수가 완전히 고갈된 후에는 화산재 대신 용암이 분출하여 분화구 중앙에 4개의 분석구와 분화구 내 저지대에 용암연못이 만들어졌다. 화산활동이 사라진 뒤에는 분화구 내에 화구호가 형성되어 이후 수만년에 걸쳐 최대 15m 두께의 퇴적층(sedimentary layer)을 집적시켰다. 이곳에 쌓인 다양한 퇴적물이 바로 과거 동아시아 기후 및 환경에 관한 기록장치들이다. 중요자원으로 평가받는 하논분화구 가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마르분화구에 저장된 퇴적물의 존재이다. 마르분화구의 지하부분 퇴적물은 어떠한 수중환경의 방해없이 원시환경의 정보가 오랜 기간 썩지 않고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고환경 정보를 간직한 ‘자연의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하논 퇴적층에 묻혀 있는 화분 및 포자와 황사입자 등 고생물·고기후 인자를 이용하면 과거 약 5~7만년 동안의 몬순 강도 변화와 이와 연관된 동아시아 기후변화 과정을 상세히 규명할 수 있다. 이를 모델로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논 퇴적층 연구의 권위자인 일본의 후쿠사와 히토시(福澤仁之) 박사도 이곳 퇴적물을 통해 고대 온도변화와 고식생의 생물군계를 측정했다. 그의 연구결과(2004년)에 따르면, 약 6,000년 전까지는 14℃로 현재 서귀포의 기후와 유사하고 약 18,000년 전에는 연평균 기온이 3℃인 것으로 나타났다. 빙하기가 물러난 것은 이때부터 시작된 기온 상승의 결과이다. 다른 북반구 지역에 비해 2,000~3,000년 앞당겨진 시기이다. 제주도가 서태평양 바다표면의 온도변화에 가장 빨리 반응한 것은 온난한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 때문이다. 고기후·고환경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하논분화구 퇴적층에 내장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현상들이다.

하논분화구 복원프로젝트의 열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자연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하논분화구는 오래도록 방치되어 왔다. 분화구내 토지들은 대부분 사유지로서 500여년 동안 논밭으로 이용됐다. 분화구가 훼손되고 화구호는 사라져버렸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부터는 난개발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하논분화구의 가치를 몰이해한 탓이다.
수 만년 동안 형성되어 온 자연이더라도 한번 파괴되면 복원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확인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무너지거나 훼손된 분화구를 제 모습대로 복원하는 일, 어쩌면 세계 최초로 진행하는 지상 최대의 과업이 될 수도 있다.
하논분화구의 복원방향은 대략 3가지이다. 첫째, 훼손·파괴된 분화구의 원형복원, 둘째, 5만년 전 형성됐다가 사라진 화구호 복원, 셋째, 천연식생을 조성하고 화구호내 어류 등 수생동물의 서식환경을 만들어 각종 동식물이 살아가는 거대한 비오톱(biotope) 공간을 창출하는 것. 이렇게 되면 인공림이 지배하고 있는 독일 아이펠 마르분화구와 구별되면서 경관적·생태적 가치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하논과 같은 대규모 분화구와 화구호를 복원한 사례는 없다. 이곳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활용을 하면서 인류가 공유해야 할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경관·지질·생태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국가가 사업주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자원, 중요한 사업도 계획에 머물러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중심이 되어 국가사업이 될 수 있도록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논의 학술적·자원적 가치에 대한 중앙정부와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사업논리를 충분히 개발하고 중앙절충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때 국가사업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최근 서귀포시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중심이 되어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WCC)의 국가 대표 의제로 하논분화구 복원프로젝트를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 연구와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최적지인 하논분화구가 지구환경정책을 논의하는 총회의 성격에 부합되고,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보전(Conservation for a New Era)이라는 총회의 주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주관하는 이 환경올림픽에 하논프로젝트가 반영될 경우 국제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과제이다.
하논분화구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논분화구에 대한 선행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는 제한적으로 하논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연구범위도 대왕산 용늪이나 무체지늪과 견주는 이탄습지에 상당 부분 얽매여 있다. 과학적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르분화구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온 독일, 일본, 중국의 과학자들과 함께 공동조사의 필요성도 이 때문에 제기된다. 복원방법에 대해서도 세계적 학자들과 심도있게 토론하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감동

하논분화구 복원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르익고 있다. 지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서귀포시와 서귀포시민, 제주도와 제주도민, 국가와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으로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후손들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한다.
세계 최초로 분화구 및 섬(분석구)이 있는 아름다운 화구호를 복원하여 빼어난 국보급 화산·경관자원을 재현하였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구환경을 학습하는 최적지로서 화산·지질·생태관광을 이끄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또한 퇴적층 연구를 통한 고기후·고생물을 규명하고 미래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세계적인 환경연구의 장으로 자리 잡게 되어 한·독·중·일 연구네트워크 구축을 시작으로 세계 석학들의 교류지역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습지 이전의 역사, 5만년 전 장엄한 하논 화구호와 만나는 경외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만큼 값진 보석을 찾을 수 있을까. 부활을 꿈꾸는 하논분화구의 미래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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